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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사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어쭈, 해보자는 거야 하며 폭력배들이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더 크게 일이 벌어지기 전에 수아가 사내를 억지로 가게 안으로 끌어들였다.


“들어가요, 영운 씨.”
“...알았어요.”
“그래, 가서 한 판 열심히 뛰어라. 빡촌 찾아오는 러브들이 다 그렇지 뭐...지들이 정의의 사도인 줄 알아. 결국 목적이 오입질말고 더 있나.”


도망치듯 창녀촌을 빠져나온 소년들은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잘 마무리 되었는지 거리는 텅 비어 조용했다. 그 때만큼 홍등가의 불빛이 을씨년스러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소년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탁소 옥상에 올라와 깜박이는 네온사인을 구경하던 혁재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동해는 혁재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소년들은 사이좋게 담배를 하나씩 나누어 폈다. 근심가마리가 담배 연기에 실려 저 멀리 날아갈 때 쯤, 거의 다 빨아들인 필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기며 혁재가 말했다.


“나한테 수아 누나 왜 보여줬어?”
“가족 있냐고 물어봤잖아.”
“친누나야?”
“아니. 걍 아는 누나.”
“근데?”
“내가 좋아하면 다 가족이지 뭐. 꼬봉들도 가족이고...”
“...........................”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집단이 가족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운 혁재는 동해의 말이 아리송했다. 굳이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아니어도 형이 될 수 있고 누나가 될 수 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해가며 사는 것이다.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왠지 옛날 신파 영화처럼 한이 맺혀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가리봉이란 동네 이름도 서글프다. 혁재는 침이 말랐다. 갈증이 나는 것 같았다.


“왜 그냐? 목 말라?”


동해는 비닐 봉다리에서 소주를 꺼냈다. 혁재가 고개를 저으며 힘겹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바싹 말라 주름이 쩍쩍 진 입술을 달싹이며 한 마디 했다.


“좋아하는 사람은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야?”
“엉. 나한텐 그래.”
“나도...가족 될 수 있어?”


가능한 멀리 내다보이는 곳까지 고개를 길게 빼고 야경을 구경하던 동해가 무심결에 ‘응?’하고 되물었다. 혁재와 눈이 마주쳤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이 쌩하니 부는 겨울바람에 날렸다. 동해는 눈을 끔벅였다. 내가 이혁재를 좋아하나? 뜸을 들이자 혁재가 씁쓸하게 웃었다.


“쫌 오바했나.”


동해는 천천히 생각했다. 꼬봉들도 가족인데 혁재가 안 될 게 뭐람. 하지만 동해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혁재는 워낙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잖아? 혁재를 알게 된 지는 이제 고작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통계적인 수치로 혁재와의 관계를 평가할 수는 없었다. 혁재를 알고부터 동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었다. 그리고 좀 전에 수아에게 인사하는 혁재를 보고 동해는 기분이 상했었다. 혁재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수줍은 얼굴을 수아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동해는 수아에게 질투심이 일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동해는 팔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내가 왜? 고개를 세차게 저은 동해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듯 혁재에게 말했다.


“아냐. 아냐. 너도 가족이야.”
“진짜?”
“어. 어. 너도 가족 해 줄게.”


큰 선심 쓰는 양 말하는 동해를 보고 혁재가 싱글벙글 웃었다. 혁재가 너무 좋아하니까 동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혁재는 이제 완전히 동해가 가진 좁은 인간관계 안에 포함되었다는 생각에 안심을 느꼈다.


“그럼 넌 나 좋아하는 거네?”
“뭐?!”
“왜 놀라고 그래. 좋아하는 사람은 다 가족이라며.”
“그건 그렇지만!! 내가 언제 니 좋아한다고...”
“수아 누나랑 정호 만득이 뚱보 모두 니가 좋아해서 가족 시켜주는 거 아냐?”
“맞어.”
“나도 거기 포함됐잖아.
“음......그것도 맞어.”
“그럼 나 좋아하는 거 맞네.”


동해는 조삼모사 식 말장난에 약했다. 혁재가 이리저리 말을 돌려 논리있게 말하자 감당하지 못하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외쳤다.


“맞어, 니 말이 다 맞어 까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