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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해산을 알리며 나온 형이 아이들의 머리를 쿵쿵 때렸다




“짜식들 장난은.”


때마침 해산을 알리며 나온 형이 아이들의 머리를 쿵쿵 때렸다. 그날 일당을 받은 아이들은 그대로 집에 가기 아까워서 동네를 뱅뱅 돌았다. 그러다 룸살롱에서부터 올라오는 한 무리의 남자들과 마주쳤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은 그들이 소리를 빽 지르자 꼬리 밟힌 강아지처럼 허겁지겁 달아났다. 룸살롱에 유착된 폭력배들이었다. 교복 아이들과 벌집 양아치들, 폭력배의 힘의 관계를 부등호로 표기해보자면 폭력배>양아치>교복 순이었다. 양아치가 다들 그렇지만,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한 법이다. 왜냐면, 강자 앞에서도 강한 척 하다가 가오 죽거든. 양아치는 가오 죽으면 땡, 이다.





2.





저녁 시간이 되자마자 햇살을 밀어내고 찾아온 어둠이 음산해보이지 않도록 유흥가는 색색의 네온사인을 점등했다. 영업이 신통치 않다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오늘부터 전단지를 들고 거리 한복판에 나가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내내 속이 안 좋았던 동해는 아랫배를 쓰윽쓰윽 문지르며 행인을 붙잡았다.


“한 번만 들어와 보시죠?”
“쪼그만게 어디 어른한테.”


밤톨만한 것이 넉살을 붙이며 끌어당기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남성은 동해의 이마를 기분 나쁘게 밀었다.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오려다 간신히 억눌러 참은 동해는 살살 아픈 배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싸하게 아픔이 느껴지자 동해는 허리를 새우처럼 접고 끙끙댔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다.


“어디 아프냐?”


낯선 목소리에 동해는 슬쩍 감았던 눈을 떴다. 골목으로 불어 닥치는 겨울바람에 샛노란 머리 끝자락이 살짝 날리고 있었다. 


“...어?”


며칠 전 신경전이 붙었던 교복 패거리의 아웃사이더였다. 아주 사소한 시비라도 일단 한 번 붙으면 화해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깊이 담아두는 편이었다. 동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기랑 얘기 해 본 적은 전혀 없었으나 빨간 머리가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았던 아이들이었으므로 그냥 좀 꺼려졌다.


“너 여기 오지 말라고 한 말 못 들었냐?”
“......”


동해는 아랫배를 움켜잡던 손을 주먹 쥐어 노란 머리의 얼굴 앞에 붕붕 흔들었다.


“내 말이 우습냐? 어?”


아무리 먼젓번에 체면을 구기고 돌아섰다고 한들 다시 찾아올 깡다구는 있었나보다. 동해 주변에는 편들어 줄 뚱보도, 만득이도, 빨간 머리도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동해는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혀가며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동해의 시답잖은 위협에 노란 머리는 아무 표정 없이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프면 도와줄까?”
“됐어 짜샤.”


보면 볼수록 이상한 애다. 쫄지도, 센 척 하지도 않는다. 동해는 도리어 제가 꺼림칙해서 손을 밖으로 저으며 가란 표시를 했다. 그러나 노란 머리는 녹색 교복 마이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동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동해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전단지 뭉치를 노란 머리에게 넘겨주었다.


“야! 나 똥 좀 싸고 올 테니까 니가 나눠주고 있어.”


그러자 노란 머리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변비였어?”
“그래 새꺄! 그럼 죽을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냐?”
“쓰러지려고 하길래.”
“하여튼,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거기 있어. 토끼기만 해! 뒤져!!”


있는 대로 협박을 퍼부으며 동해는 근처 건물의 2층 화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계단 옆에 있는 남녀공용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자 방금 볼일을 보고 나온 여자 손님이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화들짝 놀랐다. 동해는 주름이 쭈글쭈글한 샤페이 강아지처럼 이마에 주름을 잔뜩 진 얼굴로 화장실 칸에 뛰어 들어갔다. 곧이어 들리는 민망한 소리에 여자 손님은 헉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변기 위에 앉은 동해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 쥐며 쪽팔려 죽겠다고 혼잣말을 했다.